2018-06-07 지난 달 11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 국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모두가 바랐던 평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책과 노래로 배운 통일은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통일’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저 침묵했었다. 그런 우리에게 마침내 큰 변화가 찾아왔다. 디자인 스튜디오 파우(PAW)는 그날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기도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전하는 파우가 떠올랐다. 파우의 김예림 대표도 처음엔 보통의 젊은 사람들처럼 통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탈북을 한 한 청년을 알게 되면서 친구가 됐고, 그것을 계기로 북한 인권과 탈북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통일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독일도 다녀왔다. 평생 해야 할 일로 삼고 마음이 잘 맞는 오랜 친구였던 백지연 공동대표와 함께 일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10월 파우를 만들었다. 김예림 대표는 파우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백지연 공동대표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파우의 ‘PAW’는 ‘PRAY AND WAIT’에서 앞 글자만 딴 말이다. 김예림 대표는 〈워 룸(WAR ROOM)〉이라는 영화에서 얻게 된 생각이 이름이 됐다고 했다. “‘기도하고 기다릴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통일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좋은 마음을 갖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 따뜻한 마음을 갖는 거잖아요. 그렇게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통일이라는 문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시각인 것 같았거든요.” 평화의 날을 소망하는 마음이 담긴 파우의 위시백(WISH BAG) 무궁화 파우는 기도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두 가지 일을 한다. 첫 번째 소셜 미션은 소외되고 억압된 목소리를 디자인으로 전하는 거다. “마리몬드를 선사례로 들 수 있는데, 저희는 탈북민과 통일, 북한인권에 관심을 두고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를 한 소재씩 꺼내 제품으로 전하는 역할을 해요. 국내외 북한인권관련 NGO가 600개 정도 되는데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탈북민이 3만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잖아요. 남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죠.” 한반도 분단 이전의 역사인 조선시대의 민화와 예술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론가 보내지는 메시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파우 스탬프를 붙여 소비자에게 보낸다. 파우는 탈북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실크스크린 아트클래스를 진행한다. 두 번째로 파우가 하는 일은 아트클래스 진행이다. “제품 디자인을 위해 스토리를 만들고 끌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실크스크린 아트클래스를 하고 있어요. 그래픽을 찍어내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 친구들이 참여해서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파우의 수익금은 관련 단체에 환원되는데 그 과정이 좀 특별하다. 월별 정산내역을 단체 담당자들에게 직접 보낸다.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거부감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규모가 커졌을 때에도 초기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파우가 첫 번째로 선보인 천 포스터 위시맵. 손수건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파우가 첫 번째로 선보인 제품은 천 포스터 ‘위시맵(WISH MAP)’이었다. 북쪽에 고향을 두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상상하는 지도로, 핑크빛 말이 자유롭게 뛰노는 지도에는 평화의 그날을 기도하고 기다리는 파우 스테이션과 경계가 없는 남한과 북한, 그 사이를 하나로 잇는 열차가 그려져 있다. ‘WISH MAP’은 5월에 열린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서 매우 반응이 좋았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설명을 하면 듣고 그냥 가는 분들이 없었어요. 모두 구매로 이어졌죠. 독일에서 느꼈던 것도 그들이 오히려 우리의 통일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하더라는 점이었어요. 역사적으로 어떤 원인을 제공했다는 책임의식이 강했죠. 이번 페어에서도 북한 이슈나 한국의 통일 이슈를 자신들의 문제처럼 생각해 주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난 3월에는 텀블벅에서 4가지 디자인의 에코백을 선보였다.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통일에 관한 이슈를 무궁화가 활짝 핀 한반도,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진 우리나라의 모습 등 부드럽고 따뜻한 디자인으로 풀어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멸종위기동물은 DMZ 지역에 서식하는 아이들을 그린 거예요. 뭔가 상상하다 보니까 ‘거기 갇혀있는 친구들이 다른 동물들을 못 만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통일이 되면 저 친구들이 기뻐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다 만들게 됐어요.” 매일의 목표를 체크할 수 있는 달력 포스터 서울에서 백두산, 부산에서 평양으로 갈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디자인한 티켓 스티커 파우는 7월경 휴대폰 케이스를 신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 외에도 서울에서 백두산, 광주에서 신의주로 갈 수 있는 가상 티켓을 만든 스티커, 매월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실천 여부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한 프래이 캘린더, 기도하는 표정이 담긴 배지 등을 디자인했고, 휴대폰 케이스와 모노톤의 패브릭 포스터, 가방 및 파우치 등 곧 새 디자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처음 파우에 관심이 갔던 것은 에코백에 그려진 예쁜 무궁화가 핀 한반도 때문이었다. 그래픽 하나가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이것이 파우가 하는 일의 의미 아닐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파우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파우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힘을 보탤 차례다. 어렵지 않다. 파우가 계속해서 보내는 메시지를 듣고, 파우의 디자인에 꾸준히 관심을 갖기만 하면 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사진제공_ PAW기사원문보기